본문 바로가기
호주사는 이야기/시드니 라이프

엄마의 택배박스는 언제나 넘친다

by jjaustory 2021. 2. 12.

엄마의 택배박스는 언제나 넘친다

 

요즘 즐겨 듣는 노래가 있는데요,

싱어게인 노래 모음.

 

아침에 설거지하면서 싱어게인 노래 모음을 반복해서 듣고 있었죠.

 

그런데...

유미님의 '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에서 내 마음을 녹이더니 

'숨'에서 눈물이 펑...

 

 

왠지 맘이 울적해지면서 갑자기 이런저런 생각에 멍하니 한참을 앉아 있었답니다.

 

한 번씩 이런 날 있잖아요.

호르몬 때문일까요...

 

 

특히 외국에 살다 보니 오늘 같은 명절 때는 유난히 생각나는 그리운 사람이 있네요.

 

바로 엄마.

아빠껜 죄송하지만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답니다.

 

말로는 전혀 표현하지 않는 그런 성격이시지만 모든 곳에서 그 넘치는 사랑을 느낄 수 있지요.

 

심지어 양말 하나에서도 느껴진답니다.

무조건 색깔이 이쁘고 재질 좋은 것은 우리 딸 거.

 

이런 명절엔 울 딸이 좋아하는 고추튀김은 무조건.

그 외에도 냉장고를 탈탈 털어서 요리를 하시는 날이기도 하지요.

 

준비하신 음식이 너무 많아서 조금씩만 먹어도 배가 불러 숨쉬기도 힘든데 늘 많이 먹지 않는다며 불만스러운 얼굴로 저를 나무라시는 엄마.

 

삼시 세 끼를 그렇게 차리시니 정말 하루 종일 배가 빵빵할 정도인데도 조금밖에 안 먹는다고 불평하시는 엄마.

 

 

한 달 전, 코로나로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게 되면서 기숙사에서 집으로 왔었던 아이는 다시 학교 기숙사로 돌아갔죠.

 

늘 기숙사로 갈 때마다 한식에 길들여진 아이를 위해 그리고 혼자서 공부하면서 힘들 것 같은 아이를 위해 늘 완성된 음식을 얼려서 보내곤 한답니다.

 

 

이렇게 냉장 냉동실에 있던 음식들을 탈탈 털어서 그리고 몇 번의 쇼핑으로 원하는 것들을 준비해서 보내지요.

 

 

그랬더니 정말 집에 김치밖에 남지 않더군요.

김치는 아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남게 되었고요.

좋아했다면 아마 김치도 남아나지 않았겠죠 ㅎ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고.

뭐라도 빠진 것이 없나 싶어 종이에 일일이 체크까지 하면서 챙겨 보내주었답니다.

 

냉장고 탈탈 털어 터지도록 음식을 싸고 보니...

 

 

또 엄마가 생각나더라고요.

 

엄마께서는 늘 바리바리 싸주시느라 바쁘셨지요.

가장 이쁘고 맛있는 고기나 과일은 언제나 저를 위해 꼭꼭 챙겨두셨고 저에게 보낼 때까지 냉장고 깊숙이 넣어두셨답니다.

 

 

요리를 전혀 할 줄 몰랐던 신혼 초.

 

엄마는 완성된 반찬과 음식이 든 박스를 시간 될 때마다 가져오시거나 택배로 보내주셨고, 전 늘 '엄마 이거면 됐어요. 충분해'라고 말하였답니다.

 

생각해보니 미처 먹지 못해서 버렸던 반찬들이 꽤 있었네요.

 

엄마의 늘 넘치는 박스는 한국에서는 수시로 각종 반찬들이 택배로 배달되어 왔었고 냉장고에는 기본적인 양념들이나 밑반찬이 떨어지지 않았답니다.

 

 

결혼 후, 여러 해를 보냈음에도 저의 요리 실력은 좀처럼 늘지가 않더라고요.

그 당시엔 요리가 저에겐 너무 버겁고 매일 풀어야 할 숙제처럼 여겨졌었답니다.

 

끊임없이 보내주시는 엄마의 반찬 박스 때문이기도 한 것 같아요.

실력이 늘 기회가 없었던 거죠.

 

기본적인 된장, 고추장, 간장뿐만이 아니라 매실청, 멸치액젓, 마늘장아찌, 각종 마른 나물들, 김, 황태채 등등.

 

호주에 이민을 오고 난 후에도 엄마의 택배 박스는 몇 달에 한 번씩 날아오곤 하였지요.

호주에서도 여전히 엄마의 된장, 고추장 등의 기본양념들과 마른 나물들은 마르질 않았어요.

 

작년에 코로나가 터지면서 하늘길이 막히고 택배 배송료도 너무 올라 엄마께 우선 보내지 마시라고 말씀드렸답니다.

 

처음으로 시중에서 파는 된장을 구입해서 먹고 있네요.

각종 기본 재료들도 사 먹기 시작하였고요.

 

그러나 엄마가 택배로 보내주신 정성 깃든 마른 나물들이 너무 먹고 싶어요.

씨 반입이 안되기에 호주로 보내실 땐 곶감의 씨까지 모두 발라서 말려서 보내신 엄마의 곶감.

 

 

호주까지 보내느라 손으로 일일이 씻고 다듬고 말리고 하신 그 택배박스 안의 정성들은 어디에서도 살 수가 없네요.

 

이제는 엄마의 박스만큼은 절대 안 되지만 그 박스의 1/3 정도는 저의 아이에게로 보내지게 된 걸까요.

 

아이를 위해 박스를 챙기다 보니 그때의 엄마의 마음이 느껴지더라요.

 

 

전 늘 말했었죠.

'엄마, 난 엄마처럼 내 아이에게 이렇게 못해줄 거야.'

 

그러면 엄마께서는 '걱정 마. 넌 못해. 내가 없을 땐 그냥 사 먹어.'

 

엄마는 자기 딸이 힘든 것이 싫으셨던 거 같아요.

나중엔 다 사 먹으라고 하시더라고요 ㅋ

 

엄마의 늘 넘치던 박스와 그 음식들.

 

 

엄마는 음식을 하실 때마다 말씀하시죠.

'멀리 있으니 보내주지도 못하고 어쩌니 나가서 맛있는 거 꼭 사 먹어.'라고요.

 

저는 엄마께는 늘 어린아이인가 봅니다.

이젠 딸이 요리한 음식을 앉아서 드실 때인데 말이죠.

 

엄마가 너무 그리워지는 오늘 하루네요...

 

 

댓글